도서 「대한국인 안중근 -대한민국 100년을 걷다-」 출판

대한국인
2019-11-20
조회수 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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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의열단 창립 100주년을 맞는 삼중의 백배 해입니다. 이 뜻깊고 의미 있는 해에 눈으로 보고, 발로 뛰고, 가슴으로 그려 낸 안중근 의사와 우리 역사를 책으로 엮은 두 분 선생님들의 열정을 깊이 되새깁니다.

-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 신부

민족 영웅 안중근 의사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고초를 겪으신 안성녀 할머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힘으로나마 나라 독립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던 분이기에 자랑스러움이 컸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를 아는 이가 극히 드문 현실이 조금은 서글프기도 합니다. 다행히 이 책의 발간으로 할머니의 존재를 알릴 수 있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아울러 저희 가족들이 많은 위로를 받게 되어 기쁜 마음입니다.

- 안중근 의사 여동생 안성녀 여사 장손 권혁우 선생

 

 

 

 

 

안중근은 36세에 생을 버리고 의를 취했다

하지만 그의 고향은 갈 수 없고 무덤은 아직 비어 있다

안중근 의사는 한반도 나아가 중국 대륙까지 공유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저항의 상징이다! 남산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있다면 중국 하얼빈역에도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의거 현장을 재현하고 있다. 저자는 19091026930, 하얼빈 의거는 안중근 의사의 한순간이 아니라 삶 전체였고 한 개인의 우연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필연이었다고 말한다.

 

안중근 의사를 ‘10월의 독립운동가로만 기억하기에는 너무나 인색하다. 214일을 발렌타인데이로 기억하기보다 안 의사 사형선고일로 새기는 건 어떨까? 두 저자는 우리나라 전역과 러시아, 일본, 중국까지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며 안 의사의 모든 흔적을 담은 최초의 역사 답사기를 만들어 냈다. 이 책을 읽고 안 의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과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들을 가슴에 깊이 새겼으면 한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교화승 쓰다 가이준이 소장했던 유묵 진품을 만나다!

동양평화론을 몸으로 실천한 안 의사와 함께 걷는 답사기!

5년 동안 안중근 의사를 따라 걸으며 역사 답사기를 마친 저자는 안 의사를 이렇게 서술한다. “하얼빈의 대한국 참모중장 안중근은 이전엔 애국계몽 운동가였고, 교사였으며, 의병장이었다. 하얼빈 이후 안중근은 문필가였고, 평화 연구자였으며, 서예가였다. 그는 의를 위해 목숨도 바치는 참된 선비의 전통을 물려받았으되 배타적 계급의식은 버렸다. 천주교의 평등사상을 체화하고 평생 실천했다.” 안 의사는 기울어가는 국권을 지키기 위해 학교를 세워 인재를 기르고,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고, 북간도로 망명해 의병 활동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이번 답사의 색다른 점은 안중근 의사의 순국과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을 대비했다는 점이다. 안 의사는 순국 후 암장으로 지금도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일반인으로서 일본 최초의 국장으로 장례가 치러졌음을 대조한다. 두 사람이 평생 딱 한 번 만났던 역사적 현장으로 이동하는 모든 경로를 꼼꼼히 살핀 두 저자의 의지와 열정이 놀랍기만 하다. 안 의사는 의거를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역으로, 이토 히로부미는 오이소 별장 소로카쿠에서 출발해 통감도-오이소역-시모노세키-슌반로우-모지항-다롄항-뤼순-콴청쯔를 거쳐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저자는 일본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발견한다. 도쿄의 야스쿠니와 이토의 묘에 安重根은 건재했고 일본 헌정기념관엔 그가 쏜 십자가 새겨진 총알이 비장했다. 담당 간수 치바 도시치 위패와 나란히 놓인 안 의사 위패, 다이린지 안 의사 유묵을 만나며 저자는 어떤 감회에 젖었을까? 도쿄에서 천 리나 떨어진 다이린지에서 2시간이나 눈길을 헤치며 걷는 내내 문학 교사인 저자는 또 어떤 심정이었을까? 교화승이었던 조신지의 승려 쓰다 가이준이 소장했던 안중근 의사 유묵 진품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그의 답사는 교토까지 이어진다.

 

안 의사는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저항의 영웅으로 길이 빛나지만, 어떤 이는 그의 의거를 테러라 폄하하고 가족들은 영웅의 가족이란 이유만으로 보호받기는커녕 피난과 감시와 고초를 동반한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야 했다. 아들 안중생은 왜 이토 영전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는가? 충칭에서 실종된 안 의사의 막냇동생 안공근의 삶은 가슴 아프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뤼순감옥으로 면회 갔던 안 의사의 여동생 안성녀 여사는 기록조차 희미해 서글프다. 안중근 의사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두 분의 선생님을 따라 국경을 넘어 러시아, 일본, 중국까지 답사할 수 없다면 서울에 있는 안중근 동상 4, 경기 3, 충청 1, 호남 5점을 찾아보면 어떨까? 묵향에 젖어 광기의 마지막 세월을 초인처럼 평온하게 보낸 안 의사의 유묵을 마주하는 것도 영웅을 잊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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