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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정신’을 실천할 정치지도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한다

글쓴이 : 시메온 날짜 : 2017-04-12 (수) 12:06 조회 : 190
. . . ‘안중근 정신’, 이를 실천할 정치지도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한다 . . .
안 중근 의사처럼 투철한 사명의식과 불굴의 의지, 비장한 각오로 국정을 이끌 ‘혁명의 리더’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내일, 3월 26일은 일제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이등박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 순국 107주기다. 1909년 10월 26일, 서른 한살의 열혈 청년 안중근은 오전 7시경 하얼빈 역에 도착하여 어느 찻집에서 이토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거사의 현장으로 나간 까닭은 그가 당도할 시간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두 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9시나 되어서야 이토가 탄 특별열차가 하얼빈 역에 도착했고, 안중근은 서두르지 않고 수많은 인파를 헤쳐 나갔다. 이윽고 9시 30분, 도열한 러시아 병사들의 사이를 뚫고 권총을 빼들어 사열을 마치고 돌아서는 이토를 향해 4발, 연이어 3발을 발사하였다. 이토는 바로 절명하였고 수행원 넷이 큰 총상을 입었다. 그 순간 러시아 병사가 안중근을 덮쳐 총을 떨어뜨리고 땅바닥에 쓰러지면서 “코레아우레!” “코레아우레!” “코레아우레!” 하늘을 향하여 그렇게 세 번 ‘대한 만세’를 목이 터져라 큰 소리로 외쳤다.

 안중근 의사는 일찍이 정미7조약에 따른 군대해산, 국권강탈, 고종퇴위로 일본이 내세웠던 ‘한국보위·동양평화’가 국가병탄의 술책임을 간파, 확신하였다. 이런 국난의 지경을 당하여 치열한 '문제의식' 속에서 형성된 사회의식, 그 통찰은 계몽운동, 의병전쟁, 의열투쟁(이등박문 처단)에 대한 확고한 역사의식과 투철한 신념, 그리고 불퇴전의 저항정신과 실천의지를 기르는 초석이 되었다. 그리하여 '대한독립'을 위해서 교육의 발달, 사회의 확장, 민심의 단합, 실력의 양성을 충실히 실행에 옮겨 나갔다(가톨릭교도인 안 의사가 르각 신부의 조언과, 교단의 계몽주의적 정책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교육발전과 실력향상을 실현하고자 대학설립을 건의(뮈텔 주교 거절)하고, 삼흥학교 건립, 돈의학교 운영에 매진하였다. 사회확장과 민심단결을 위해 서우학회(서북학회 전신) 가입, 국채보상운동 투신, 삼합의(석탄회사) 설립을 추진, 진력하였다. 그런 가운데 항일독립 투쟁에 나설 것을 결심한다. 1909년, 동지 11인과 ‘대한독립’을 결의하여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동맹의 의식을 치르고, 이를 ‘정천동맹’(正天同盟)으로 선언하였다. “하늘의 뜻을 바로 세우는 데 투신하리라!”는 투철한 사명의식과 불굴의 의지, 비장한 각오를 천명함이었다.
 또한 이토 히로부미를 일제의 원흉, 겨레의 원수로 단정하고, 그를 반드시 처단해야 할 단서인 15 가지의 죄목을 적시하였다. 요컨대, 한국의 국권(독립국 지위)보장 위약, 동양평화 침해의 주범으로 온 세상을 기만한 큰 죄를 지었으므로 죽임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정략이 이같이 잔혹해진 근본을 따져본다면, 이는 이른바 일본의 대청치가라는 늙은 도둑 이등박문의 폭행에서 기인된 것이다. (중략) 만일 이 도둑놈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결국 없어지고야 말 것이며 동양 또한 망하고 말 것이다” (안중근,‘안응칠역사')
이 신념과 철학에 따라 안 의사는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하여 이를 제창하였다. 그 방법론으로써 동양 삼국(한국·일본·중국)이 화합, 단결하여 평화회의 체제를 구축하고 상공업 발달을 촉진시켜 경제발전을 도모하며, 경제부흥의 지원을 위한 공동은행 설립과 삼국 연합군대의 창설, 그리고 교육으로 힘을 길러 백인(서양열강) 침략의 저지를 주창하였으며, 이로써 진정한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획기적인 제안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저술을 마치기까지 사형집행을 늦추어 주기로 했던 일본 법원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탓에 아쉽게도 안중근의 ‘동영평화론’은 완결되지 못하였다.

 조국의 독립과 정의·평화를 위하여 목숨을 기꺼이 바쳤던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언은 두 가지의 비전(vision), ‘대한독립과 동양평화’였다. 안 의사는 독립투사로써의 사명, 그 너머를 향한 평화의 지향과 실현의 원대한 희망과 이상을 지녔던 선구자, 사상가이고 혁명가였으며, 위대한 순교자이기도 했다.
“안중근은 기뻐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가 재판을 받는 동안 법정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열변을 토하면서 두려워 한 것이 하나 있었다면, 그것은 혹시라도 이 법정이 오히려 자기를 무죄방면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었다. 그는 이미 순교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기웅,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 — 그는 영웅의 왕관을 손에 들고 늠름하게 법정을 떠났다 ; 한 신문기자의 안중근 공판 참관기)

 . . . . 안중근 의사의 ‘사상과 실천’을 본받아 ‘민주시민혁명’을 성공시킨다 . . . .
. . . . . . . — 민주민권, 주체의식, 도덕성 회복, 교육혁명, 민족정신 고취 . . . . . . .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사서삼경(성인지도 聖人之道)을 공부하여 ‘선비정신’에 투철했을 안중근 의사는 이상적인 세계를 ‘도덕적 세계’로 보았다. 물론 그런 세상은 대한독립과 동양평화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안중근 정신(사상)’은 첫째 ‘민권’(civil rights)인데, 그리스도교의 인간관과 공맹(孔孟)의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민권사상’을 정립하였다. “천명의 본성으로 하느님이 불어넣었다”는 ‘천부인권론’(자연권, natural rights)을 명정하게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독립국가의 실현은 민권의 구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였다. 민권의 실현, 즉 인권(인간의 존엄성)의 사회화는 구체적으로 난신적자(亂臣賊子,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신료와 어버이의 뜻을 거스르는 자식)를 제거하고 문명국가를 이룩하는 것이다.
 둘째로 ‘주체의식’이며, 그리스도교를 자주적·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나라가 부강해지면 한국어가 만민 공용어가 되리라는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주체적 민족의식’을 견지하여 이를 몸소 실천하였던 것이다. 셋째 ‘도덕적 인간본성’의 회복인 바, 지난 과오를 깨달아 참회함으로써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진리를 실천하며 사회정의 실현을 강조하였다. 넷째 ‘교육’을 통하여 인륜, 즉 세상의 바른 이치와 본연의 도리를 터득하고, 실력과 정신력을 기르며 물질적으로 풍요한 나라, 평화로운 세상을 이룩하여야 함을 설파하였다.
다섯째 ‘민족의식’의 고취를 강조하였거니와, “만일 국민이 국민 된 의무를 행하지 아니하고서 어찌 민권과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지금은 민족세계일진대 어찌하여 홀로 한민족만이 남의 밥이 되어 앉아서 멸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겠는가” 시대를 앞서는 ‘민족’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겨레(민족)정신에 투철하였고, 서학(그리스도신학)을 통섭하여 편중된 동양적 세계관에서 탈피, 인식의 지평을 확장함으로써 종교적 제국주의와 민족의 내적 모순을 자각하였다. 그리하여 민족문제(대한독립)를 자주적 민족의식과 민권사상을 통하여 해결하고자 하였고 이를 함양, 정립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안중근 의사가 목숨을 걸고 일제에 항거하여 항일독립 투쟁을 벌이고, ‘하얼빈 의거’를 결행하던 그 시대는 주지하다시피 국가의 명운이 풍전등화 같았던 격동의 세기였다. 그런데 심히 걱정스럽게도 오늘날, 우리나라의 국내외 정세가 국정파탄과 정치파행, 열강의 침략과 각축(西勢東漸·서세동점)으로 극도의 불안과 혼란에 빠졌던 조선말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컨대, ‘부패망국’(腐敗亡國)의 지경에 이르러 불안감과 배신감이 극에 달한 온 국민이 민주시민혁명에 나섰고 ‘국민명령’을 거역하는 최고집정자를 파면한,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crisis management)이다.
 이렇듯 지금, 우리나라는 가히 혁명적 상황이다. 혁명의 발발 원인은 개인의 심리적 요인, 사회경제적 요인, 정치적 요인인데, 기득권 세력의 ‘부정부패’와 그로 인한 극심한 ‘불평등·양극화’에 따른 민생불안으로 혁명의 ‘사회경제적 요인’이 최고조의 상태다. 혁명에 불을 지르는 ‘정치적 요인’, 그것은 국정의 농단, 파행으로 인하여 ‘집정자’(국가 최고책임자)가 탄핵 당함으로써 현실이 되고만 불행한 사태에 이르렀다.
그런 지금이야말로 혁명의 ‘개인의 심리적 요인’으로써 불굴의 혁명의지를 갖은 지도자의 역할이 절실한 상황이며, 강력한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현재 진행의 ‘민주시민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이번 19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위대한 사상가·혁명가 ‘안중근 의사’처럼 철학과 신념이 탁월하고, 투철한 역사의식, 시대정신과 사명감, 불굴의 실천의지를 갖춘 용감하고 지혜로운 혁명의 리더, 정치지도자(메시아 messiah, 열정적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부정부패’를 척결, 악습과 무원칙·부조리를 타파하여 정의와 원칙을 정립함으로써 ‘자유와 평등, 안정과 평화’가 보장되는 정의사회, 공정국가를 이룩해야 한다. 그 핵심은 ‘부(富)의 양극화, 소득 불평등’을 완화, 해소하여 민생안정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부정부패 척결과 함께 정치의 기본으로 삼아야 하며, 반드시 ‘부패척결’을 동시에 실행해야 하는 까닭은 ‘민생경제’의 안정 발전과, 나아가서 ‘사회정의와 평화’의 추구를 위해서는 무원칙과 부조리를 타파하여 원칙과 공정이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그런 것이다.

 안중근 의사를 기리면서, 염원하는 바는 우리나라의 지도자·위정자들이 ‘안중근 정신’과, 살신성인(殺身成仁)함으로써 이를 몸소 실천한 안 의사의 행동철학을 본받는 것이다. 문득,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서여기인(書如其人, 글씨는 바로 그 사람과 같다), 그 말처럼 미려하면서도 곧고 힘찬 필치로 써서 남긴 유묵의 경구가 생각난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 특히 지도자·위정자들이 사리사욕을 버리고 오로지 나라와 정의를 위하여 살며, 늘 열심히 공부하고 깊이 생각하여 지혜, 곧 지적능력을 길러서 ‘지(知)의 의무’를 다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쳐라” (見利思義 견리사의 見危搜命 견위수명)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一日不讀書 일일부독서 口中生荊棘 구중생형극)

 안중근을 기리는 우리에게 제기되는 물음은 단순하다. 안중근이 바랐던 그 의(義)의 세계,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의 세계를 향하여 우리는 정진하고 있는가? (황종렬, ‘안중근 토마스의 하느님·세계·인간 이해’)
                                                            2017년 3월 36일

                                                      주체적민주시민 시메온 권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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