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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호를 딴 ‘인촌로’는 절대 안 된다

글쓴이 : 대한국인 날짜 : 2011-06-16 (목) 21:07 조회 : 4065
다산 정약용이 엮은 <이담속찬>(耳談續纂)이라는 책이 있다. 명나라의 왕동궤가 중국 속담 170개를 모아 쓴 <이담>이라는 책에, 다산이 다시 우리나라 속담 241개를 증보한 속담 모음집이다. 

이 책 가운데 다음과 같은 가슴 섬뜩한 경고가 있다. 
“여러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 병이 없어도 죽는다.”(千人所指 無病而死) 

남에게 손가락질 받을 짓을 하는 사람치고 그 끝이 좋은 경우란 절대 없다는 가르침이다. 설사 당장은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과보를 받는다는 의미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펼쳤던 만해 한용운 스님과 석전 박한영 스님 등이 주석했던 600년 고찰 개운사의 주소를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인촌 김성수의 호를 따서 ‘인촌로’로 바꾸려 했던 서울 성북구청의 어처구니없는 행정이 불교계와 항일운동 기념단체들의 강력한 항의로 최근 번복됐다. 구청장이 잘못을 인정해 주소를 원상회복시킨 것은 다행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문제는 고려대 주변 큰길의 명칭을 여전히 ‘인촌로’로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촌 김성수가 누구인가. 그의 친일행적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고, 국가보훈처에서도 김성수의 친일행적을 확인하고 서훈 취소를 검토하고 있는 인물이 아닌가. 

그럼에도 성북구 관내 도로 30여곳의 길 이름을 ‘인촌로’라고 하겠다는 성북구청의 행위는 역사 앞에 부끄러운 짓임을 알아야 한다. 

성북구청은 도로명을 ‘인촌로’라고 정한 이유를 인촌이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설립자이기 때문이라고 둘러댄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보성전문학교의 설립자는 구한말 정치가이며 재력가로 국가재정을 강화하기 위해 경제정책을 주도했고, 개혁당을 조직하여 친일파와 맞섰던 애국자 석현 이용익(1854~1907) 선생이다. 설령 성북구청이 내세운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고 하더라도 도로명은 마땅히 ‘석현로’나 ‘이용익로’로 바뀌어야 맞다. 

석현 선생은 해외에서 구국운동을 벌이다가 끝내 귀국하지 못하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숨진 민족의 지도자였다. 특히 석현 선생은 일본에 억류되어 있던 1년 동안 일본의 근대화된 문물을 접하고 교육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고 판단해 보성사 인쇄소를 차리고 보성학원(지금의 고려대, 보성중·고등학교)을 설립했다. 보성사 인쇄소는 훗날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던 민족의 성소이기도 하다. 

당시 세월이 하 수상하여 민족자본으로 세운 첫 교육기관인 보성전문학교가 불행하게도 친일파의 손에 넘어갔으나,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해 나라를 돕겠다는 ‘흥학교 이부국가’(興學校 以扶國家)의 건학이념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고려대가 스스로를 ‘민족 고대’라고 부르는 것 또한 이 때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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