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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실종사건 조사 결과 중간 발표에 대한 입장

글쓴이 : 대한국인 날짜 : 2005-05-31 (화) 19:47 조회 : 1714
김형욱실종사건조사결과중간발표에관한입장.hwp (54.5K), Down : 13, 2009-06-30 14:14:10


국정원 과거사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규명위원회)의 중간 발표와 관련하여 10.26재평가와 김재규 장군 명예회복 추진위원회(이하 재평가 추진위원회)에서는 발표내용은 물론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국민들로 하여금 확신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잘못된 과거사를 규명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동의하면서도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규명위원회의 중간 발표의 경우 관련 당사자들의 폭넓은 증언이 없이 당시 중정 직원들에 대한 일방적인 진술만을 토대로 김재규 전 중정부장이 이상열 공사에게 지시를 한 것처럼 사실 관계를 전개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문제 등에 대한 재평가를 시작하려는 마당에 유신의 핵인 박정희를 살해한 김재규 전 중정부장에게 김형욱 부장 암살의 책임을 돌리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본다.

따라서 규명위원회의 발표와 관련 의구심으로 등장하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우리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1.관련 인물 조사의 한계

어떤 사건을 조사함에 있어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라든지 당사자들의 신분상의 위치등이 면밀히 분석되어야 함에도 그러한 점에 있어서 관련 인물 33인에 대한 면담 조사는 문제가 많다고 본다,

여기서 관련자로 등장한 인물은 모두가 당시 중정 간부이거나 주불 거점요원들 및 연수생들로서 이들은 당시 누구보다 신분상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김재규 부장의 갑작스런 박정희 살해로 나타난 신분상의 불이익을 당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고 본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하지 않았다면 승승장구 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이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그리고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일종의 상실감과 자괴감이 자리할 수밖에 없고 이런 가운데 과거사 진상 규명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사를 들추는 행위야 말로 그들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들의 증언은 다분히 자신들이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억울한 부분에 대한 울분의 토로일 수 있고 이를 계기로 현 정권의 과거사 들추기로 비치는 정책에 대한 반전을 노리는 행위로도 인식할 수 있다 할 것이다.

따라서 관련 인물들에 대한 조사를 할 때는 중정 요원뿐만 아니라 이를 강력히 부인하는 관련자들의 증언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번 조사는 객관성을 상실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더구나 규명위원회가 김재규의 지시라고 단정적으로 확신한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겨우 연수생 신분인 신현진 1인의 진술에 불과하고 다른 중정 본부 요원 5인의 경우 중정이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이상열 공사는 개입 흔적이 보인다고 진술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실종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시점인 1979.10.16경 주불 거점에 진상 파악을 지시한 점 등으로 보아 사건 개입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규명위에서는 밝혔으면서 김재규 부장의 직속 부하인 그들 5인의 진술은 거부되고 오로지 연수생 신분인 신현진 1인의 진술에 의존하여 사실인양 발표한 것은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 할 것이다.

특히 33인의 조사 대상자 중 핵심 인물인 이상열 공사는 김재규의 지시를 받았는지 여부에 대하여 함구하고 있으며, 이상열 공사로부터 지시를 받았다고 한 사실도 연수생 신분인 신현진의 진술에 의한 것 외에는 누구도 김재규의 지시임을 밝혔다는 진술이 없다.

그리고 다른 객관적인 정황증거가 없는데도 단순히 이상열 공사가 실종 사건 직전인 1979.10.1 경 비밀리에 귀국하여 김재규 부장을 두 차례 만난 점(10.26 당시 중정 차장보가 합수부 조사시 진술)과 실종 사건 직후인 1979. 10.18 귀국하여 김재규 부장에게 은밀히 보고하고 동월 19일 파리로 귀환 한 점(국정원 존안 문서 및 당시 조 모 중정 유럽 당당 과장 진술)만이 김재규 부장이 지시한 이유로 확실시 된다는 것은 사건의 중대성에 비추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데는 객관성이 떨어진다 할 것이다.

아울러 이상열 공사가 김재규 부장에게 은밀히 사건을 보고 한 날자로 알려진 1979.10. 18일은 김재규 부장이 당일 새벽 2시 당시 부마항쟁의 현장을 직접 살피려고 헬기로 부산 일대를 둘러보고 돌아와 박정희 대통령에게 그 실상을 보고를 한 시점으로 국내정치 상황이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는 시점인데 단지 국정원의 존안 문서와 조모 과장의 진술에만 의존하여 김재규 부장의 지시로 단정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당사자로서 김재규는 10.26 이후 변호사들과의 면담을 통하여 결코 자신은 김형욱을 죽이는데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며, 오히려 박정희를 살해한 결정적인 동인이 같은 동료인 김형욱을 박정희가 암살한데 따른 충격이었다고 최세현 전 주일 공사가 증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강신옥 변호사는 자신이 육군 교도소로 면회를 갔을때 김형욱씨 살해 사건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했으며, 자신의 손위 동서로 전 주일 공사를 역임한 최세현 박사에게도 박대통령이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김형욱씨를 그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느냐고 격분했다고 한다.
또한 최세현 박사는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이 과거의 동지를 눈 앞에서 죽였던 사실을 보고 분노했을 것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각하와 남산 공화국 : 김형욱 암살이 결정적, 세계일보, 1987)

  2. 사건의 인과 관계의 부존재

당시 국내는 박정희의 독재가 하늘을 찌를 듯 하여 그해 가을 YH 사건을 비롯하여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 파동에 이은 부마항쟁으로 인하여 민심은 극도로 악화 일로에 있었다.

이런 와중에 김형욱은 미국에서 박정희의 추악한 면을 미국 조야에 알리려 하였고 이에 불안을 느낀 나머지 박정희는 김형욱에 대한 회유와 협박 그리고 살해에 이르기까지 김재규가 스스로 그러한 행동을 했을까 생각하면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할 것이며,  설사 김재규가 김형욱의 살해를 지시했다 손치더라도 박정희의 지시없이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그리고 자신과 같은 신분의 중정부장을 살해하려고 했을까 의구심이 들 뿐만 아니라 사건의 인과 관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그리고 김재규는 어떻게 해서든 김형욱의 회고록 출간은 막아야겠다는 일념으로 1979년 초 김형욱한테 편지를 통하여 귀국을 종용하기도 하였는데 매우 겸손하고 간곡한 마음으로 국익을 위하여 회고록만은 출간하지 말아주도록 부탁을 하였다.

참고로 당시 김재규가 김형욱 부장한테 보낸 친필 서한의 일부를 공개한다.(오성현 저 비운의 장군 김재규에서 인용)

“각하께서는 그 친구(김형욱)가 돌아오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돌아와 일하겠다고 하면 중책도 맡기지 .  모든 걸 훨 훨 뿌리치고 고국에 돌아오셔서 다시 예와 같이 손과 손을 맞잡고 나라와 겨레를 위한, 더욱 보람되고 값진 일을 해보시지 않겠습니까?”(1979.1.17)

“... 사필귀정으로 신념으로 삼고 지금까지 지켜온 김부장의 침묵을 귀국이라는 행동으로서 깰때가 되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싱긋이 웃으며 김포공항의 트랩을 내리는 김부장의 그리운 모습을 생각하면서”...(1979 . 2.17)

이처럼 한 사건의 인과 관계에 대한 존재여부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김재규의 김 부장에 대한 겸손한 자세에서 비롯한 행동 양태와 당시의 국내 정세로 볼 때 김재규가 김형욱을 살해하라고 지시를 했다고 단정적으로 인정해 버린 규명위원회의 발표는 많은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고 할 것이다.

3. 김형욱 사건과 10.26 사건과의 역학 관계

규명위원회의 발표에 의하면 김형욱의 살해 사건은 김재규 부장의 지시에 의하여 이상열 공사의 주도로 이루어 졌다. 여기서 당시 박정희의 부화를 가라앉힌 김재규 부장의 행위는 엄청난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재규 부장은 차지철의 견제와 박정희의 권력욕 앞에 박정희의 눈밖에 날 수 밖에 없었고 당시 국내정치 상황과 맞물려 툭하면 핀잔을 듣기 일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욱이 10.26 이후 신군부는 김재규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하여 부정과 부패 그리고 파렴치한 행위로 몰고 가려고 하였다는 점에서 바로 불과 10여 일 전에 발생한 김형욱 살해 사건은 좋은 호재였을 수 있었음에도 합수부 어떤 조사에서도 김재규 부장에 대하여 김형욱 살해의 혐의가 없었다는 것이야 말로 김재규 부장의 무협의를 반증한 것이라 할 것이다.

당시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옭아매서 김재규 부장을 파렴치하고 패륜적 행위를 한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고 갔다는 점에서 김형욱 암살의 배후가 김재규 부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군부는 더 이상 김형욱 사건의 확대를 피하고자 뒤집어 씌울 수 있었는데도 김형욱 암살의 배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본다.  

  
4. 우리의 입장: 조급함에 앞서 실체적 진실의 규명이 중요하다.

과거사를 규명하는데는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떠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규명위원회의 중간발표는 국민들로 하여금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규명위원회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김형욱 살해 계획 수립 및 살해 과정에 대한 진술이 연수생 신분인 신현진 1인에 의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핵심이라고 지목된 이상열 공사와 이밀만 이만수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거나 아예 진술을 거부하는 등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데는 매우 미흡하다 할 것이다.

더구나 신현진의 경우도 다른 진술은 거의 요즘에 일어났던 것처럼 진술하면서 현장 검증이 가증한 사체 유기 장소에 대하여는 유독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다른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비록 과거사 진상 규명을 위한 누더기 같은 법률이 통과되었지만 그 핵심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박정희 전 대통령임을 부인 할 수 없고 그 아래서 은혜를 입었다고도 볼 수 있는 신현진을 비롯한 사건에 연루된 중정 요원들의 경우 박정희와 대칭점에 있는 박정희 살해범 김재규 부장에 대한 감정이 좋을리 없고 과거사를 들추어내려고 하는 현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본다면 충분히 박정희가 아닌 김재규 부장의 지시로 김형욱을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기득권 세력에 의한 박정희 향수에 젖어 있는 많은 국민들의 경우 이제야말로 박정희가 김형욱을 죽인 폭군이 아닌 보리고개를 없애고 경제 성장을 가져온 성군으로 여기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규명위원회의 중간 발표는 역설적이게도 박정희를 부활시켜줄 수도 있다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에 10.26 재평가와 김재규 장군 명예회복 추진위원회에서는 민족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올곧은 역사의 정립을 위하여 김형욱 사건은 물론 1026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반드시 규명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강구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2005 . 5 . 27

             10.26 재평가와 김재규 장군 명예회복추진위원회
                        
공동 대표 : 이돈명 변호사, 청화 스님, 김상근 목사, 김현 교무
집행 위원 : 강신옥 변호사, 함세웅 신부, 이해학 목사, 효림 스님, 이정택 교무,
집행위원장 : 김범태
연락처 : 02-928-7631,016-650-5099(김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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