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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평화기자단]영웅은 혼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글쓴이 : 대한국인 날짜 : 2017-09-17 (일) 03:12 조회 : 150

영웅은 혼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안중근 2팀 박서정

 

엘리트학생복에서 3.1절을 맞아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가장 존경하는 독립투사가 누구인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독립투사는 안중근으로 41%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장 좋아하는 독립운동가 설문에서도 안중근은 상위권을 차지하였다. 이처럼 안중근 의사는 연령을 초월하여 온 국민에게 존경받는 독립운동가이다. 그런데 안중근 의사에게는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안중근 의사를 홀로 이토를 처단하고 외롭게 감옥에서 투쟁하다 돌아가신 의사로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과연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을 한 개인이 만들어낸 거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의거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의 안중근 의사의 독립 운동에 대해서는 다소 알려진 바가 없다. , 혼자서 이룬 것처럼 보이는 의거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의거 이전 안중근 의사의 단체 활동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정확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안중근 의사의 전 생애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안중근 의사는 직업이 다양한 사람이었다. 그는 교육자의 삶을 살기도 하였고 사업가의 길을 걷기도 하였으며 다양한 단체에서 영향력 있는 지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안중근 의사가 적극적으로 독립 운동에 몸담게 된 시기를 1905년 을사늑약의 체결 이후로 보는데, 을사늑약 이후 그는 서우학회에 가입하고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장을 자처하였다. 또한 국민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나라의 희망이라 여겨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우기에 이른다. 그리고 본인과 연이 닿았던 많은 독립운동가에게 연락을 취해 그가 세운 학교의 선생님으로 초빙하고,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한재호, 송병운과 함께 평양에서 석탄 사업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안중근 의사는 다양한 독립운동가와 함께 교육과 식산흥업방면에서 나라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하얼빈의거 이후 감옥에서 심문을 받았을 당시 그의 신분은 의병이었다. 하얼빈의거 이전 1908년부터 그는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역사수업시간에도 주요하게 다뤄지는 1908년 국내진공작전의 주역이 바로 안중근 의사이다. 그는 연해주의 항일 조직 통합 단체인 동의회에서 평의원의 자격으로 활동하다가 이후 국내진공작전의 핵심인물인 우영장의 직책으로 승격하여 국내진공작전의 대표적인 승첩으로 꼽히는 홍의동전투와 신아산전투를 훌륭하게 이끌어냈다. 국내진공작전은 영산 전투를 끝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안중근 의사는 이후 한인사회를 3개월간 순방하며 위축된 의병의 열기를 다시 살리기 위해 교육에 힘쓰고 단체 결성에도 힘썼다고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발족된 단체가 바로 동의단지회(단지동맹)이다. 비록 하얼빈의거에 참여한 안중근의 동료들 중 동의단지회의 인물은 한 명도 없었지만, 동의단지회에서 결의하였던 희생정신과 실천의식이 하얼빈 의거의 근본적인 저력이 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앞서 말한 하얼빈의거에 참여한 안중근의 동료들이라는 대목에서 의아했을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혼자서 거사를 실행하다가 만일 실패하면 세인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고 동지들에게도 면목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의거를 함께할 동지들을 모색하게 된다. 그는 거사동지로 국내진공작전과 단지동맹을 함께 하였던 우덕순을 선택하였다. 우덕순 뿐만 아니라 이토 처단을 위한 자금 마련, 하얼빈으로 안전하게 가기 위한 통역과 신분증 마련 등을 위해 이진룡, 유동하, 최재형과 같은 많은 독립운동가가 도움을 주었다. 이토를 총으로 처단한 사람은 안중근이지만, 하얼빈의거는 그 혼자서 이룬 거사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이지만 홀로 독립적으로 투쟁한 운동가는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단결과 화합을 중요시한 독립투사였다. 그가 개인의 힘으로 독립 운동을 이루어낸 독립투사로 그려지는 이유는 첫째로 안중근이라는 인물보다는 하얼빈의거라는 사건에 역사교육의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고, 둘째로 민족의 영웅 안중근을 외롭고 고귀한 존재로 그려내려는 시도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앙일보 이문열 기자는 그의 기사에서 안 의사를 한 고결한 의지로, 외롭지만 빛나는 결단의 존재로, 불멸의 가치를 위해 스스로를 투척하는 실존으로 그려내는 데 급급해서 100년 전 이 연해주에서 연출된 아름다운 민족혼의 향연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닐지.’라고 서술하기도 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노력한 훌륭한 투사였으며, 국적이었던 이토를 처단한 추앙받기에 더없이 적합한 영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거사, 거사 이전에 안중근이라는 사람이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조력과 협력이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영웅은 혼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